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데스클락 연애조작단


 

 

 “그 거지같은 클럽에서 잡놈들이 연주하는 걸 또 보러가자고? 패스.” 네이선이 무심하게 말했다.

 “토키, 우린 그딴 짓에 인생을 낭비하기엔 너무 중요한 인간들이야!” 

 

 물담배를 빨던 피클스가 코와 입에서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으면서 대답했다. 멤버들에게서 돌아온 싸늘한 반응에 토키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데스클락 멤버들은 일반인들이 있는 곳에 가는 걸 매우 싫어했고, 토키도 그에 맞춰 배타적인 생활에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쩐지 실내에서 비디오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울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키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서머빌 어딘가에 있는 클럽에서 또 다른 데스클락 트리뷰드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들은 유명세를 타지는 않았지만 그 근처에서 꽤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치만 그 밴드 꽤 잘 한다고 햇는 걸. 어떨지 궁금하지 안아?”

 “메~ 별로. 그런 밴드들은 그 때 썬더홀스 구경 한 번한 걸로 됐어.” 피클스가 손을 내저었다.

 “너 설마 또 그런 잡놈들이랑 같이 내 흉내를 내고 다니고 십은 거냐?” 스퀴스가가 수상쩍다는 눈으로 토키를 노려보았다.

 “그런 짓 인제 안 할 거거든?!”

 

 토키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토키는 더 이상 멤버들을 설득해봤자 얻을 게 없다는 걸 알았다.

 

 “됏서 그럼. 나 혼자 가서 재밋게 놀 거야!”

 

 토키는 새침하게 쏘아붙인 후 뛰어나가다가 혹시나 마음을 바꾼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가기 전에 뒤를 돌아다 보았다. 하지만 멤버들은 모두 피클스가 만드는 이상한 모양의 물담배 연기를 구경하느라 바빠서 그 누구 한 명도 토키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토키는 땅을 한번 발로 차는 걸로 화풀이를 하고 모드하우스를 나섰다.

 토키는 자신이 그 클럽으로 간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필요 최소한의 클라카티어들과 모드하우스에 있는 가장 작은 차에 동승한 채 소식을 들었던 밴드가 공연한다는 클럽으로 향했다.

 

 “오 참, 변장을 해야지.”

 

 토키는 입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야구모자를 꺼내 썼다. 순식간에 누가봐도 데스클락의 일원이라는 걸 알아볼 수 없는 완벽한 일반인이 된 토키가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클럽 안에 입장했다.


 토키가 입장했을 때는 밴드가 이미 연주를 시작한 후였다. 토키는 익숙한 음악에 리듬을 타면서 바에 다가가 맥주를 한 병 구매했다. 스테이지 앞에 있는 관중들이 트리뷰트 밴드의 노래에 열광하고 있었다. 토키는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며 그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밴드의 실력은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치는 편이었다. 토키는 이 밴드보다 훨씬 더 뛰어난 아마추어 밴드를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리드 기타만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그 밴드에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토키는 그 리드 기타리스트에게 관심을 갖고 트리뷰트 밴드의 연주를 지켜 보기 시작했다.

 트리뷰트 밴드의 멤버들 모두가 각자 맡은 데스클락 멤버들과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 리드 기타리스트도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게 금발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무채색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키는 스퀴스가 본인 보다는 약간 작았으며 얼굴은 선이 또렷한 스타일이었다. 토키는 그가 젊었을 때의 스퀴스가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트리뷰트 밴드는 다른 곡을 몇 곡 더 연주하고 공연을 마쳤다. 그들은 곧 무대를 정리하고 내려와 바에서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나 클럽의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다른 밴드 멤버들과 달리, 그 스퀴스가를 닮은 기타리스트는 좀 동떨어진 곳에 혼자 서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토키는 그에게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용기를 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헤이, 아까 연주하는 거 들엇서. 너 꽤 잘하던데.”

 “아, 고마워. 그렇게 말해주니 쑥쓰럽다.”

 

 그가 자신을 칭찬해주는 토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토키는 그가 유창한 보스턴 억양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잠시 당황했다. 토키는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그가 스웨덴 억양을 쓰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살짝 얼굴을 붉혔다.

 

 “내가 맥주 사도 댈까?”

 “그래. 잘 마실게.”

 

 토키가 바텐더에게 맥주를 두 병 더 주문했다. 그 기타리스트는 고마워하면서 거의 다 비운 자신의 맥주병을 기쁘게 새 것과 교환했다.

 

 “내 이름은 올리버야. 너는 뭐라고 부르면 될까?” 그가 자기소개를 하며 예의바르게 물었다.

 "오, 내 이름은 토…투스야." 토키가 자신의 이름의 중간 부분을 이 사이로 씹어흘리며 대답했다.

 "토투스? 너네 부모님도 너 싫어하셨구나."

 

 올리버는 장난으로 한 말이었지만 얼떨결에 정답을 맞춘 셈이 되었기 때문에 토키는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올리버의 입꼬리도 토키를 따라서 올라갔다. 토키는 이 스퀴스가를 닮은 청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이 밴드에서 연주한지는 얼마나 됏서?”

 

 토키는 올리버와 맥주를 몇 병 더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토키는 얘기를 나눠볼 수록 그가 꽤 괜찮은 친구라는 걸 알았다. 그는 아는 게 많았지만 겸손했고, 무례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농담을 할 줄 알았으며, 토키의 말을 끊지 않고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여러모로 스퀴스가와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토키는 스퀴스가와 얘기를 나눌 때마다 대화가 토키를 조롱하는 것으로 끝나거나 토키의 이야기가 지루하다는 이유로 스퀴스가가 자리를 피해버리곤 했던 것을 떠올렸다.

 

 토키는 이렇게 자신을 동등한 인격체로 취급해주면서도 관심사가 상통하는 다른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토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올리버와 얘기를 나누다가 클럽 내부가 한산해진 걸 눈치채고 나서야 밤이 꽤 깊었음을 깨달았다.

 토키는 슬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풀이 죽었다. 올리버가 토키의 기색을 잠시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음… 우리집에 가서 더 마실래? 여기서 세 구역 정도만 걸으면 있어.”

 “그래, 좋아!”

 

 새 친구의 초대에 토키가 반색하며 응했다. 토키는 밖에서 대기중인 클라카티어들에게 자신이 모드하우스로 곧장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문자로 알리고, 올리버와 함께 클럽 밖으로 나와 그의 집으로 향했다. 

 

 올리버가 안내한 곳은 지은 지 30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낡은 아파트였다. 토키는 올리버를 따라 다른 저소득층 세대들이 살고있는 허름한 복도를 지나서 그가 사는 곳에 도착했다. 

 올리버의 살림살이는 매우 단초로웠다. 방 가운데에는 침대 매트리스와 빈백이 있었고, 전자기기는 오디오 장비와 냉장고가 전부였으며 랩탑 조차 없었다. 토키는 스퀴스가 또한 그의 방에 다른 잡동사니를 일체 두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역시 좋은 기타리스트가 되려면 기타 외엔 관심이 없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뭐 넓지는 않지만, 편하게 있어.”

 

 올리버가 방 한쪽에 자신의 기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토키는 그 말을 사양하지 않고, 낡았지만 세탁한지 얼마 안돼서 깨끗한 빈백에 다가가 몸을 뉘었다. 올리버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토키에게 건네주었다. 토키는 맥주를 몇모금 홀짝이곤 오디오 플레이어를 가르키며 올리버에게 물었다.

 

 “노래 틀어도 대?”

 "그래, 듣고 싶은게 있으면. 시간이 늦어서 크게는 못 틀겠지만."

 

 토키가 오디오 플레이어 앞으로 다가가 CD 더미를 뒤적거렸다. 올리버는 토키의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올리버의 콜렉션에 있는 데스클락을 비롯한 다른 여러 메탈밴드의 앨범들을 별 감흥없이 손으로 넘겨보던 토키는 그 중에서 매직으로 숫자가 갈겨져있는 공시디들을 발견했다.

 

 “이건 머야?”

 “아… 이건 내가 작곡한 데모곡이야.” 올리버가 머슥해했다. 

 “이거 듣자.”

 “이걸? 후회할 걸. 진짜 별로거든.”

 “별로면 머 어때. 상관 업서.”

 “난 경고했다?”

 

 올리버가 마지못해하며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데모곡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했다.

 올리버의 자작곡은 그가 자학한 만큼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기타 실력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의 곡은 대체로 데스클락의 노래와 분위기가 비슷했지만 그만의 독창성이 섞여있었다. 같이 녹음할 실력이 좋은 드러머를 구한다면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노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래를 듣는 내내 팔짱을 끼고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가끔씩 토키를 힐끔거리며 그의 표정을 살피던 올리버는, 노래가 끝나자 말없이 토키의 감상을 기다렸다.

 

 “데스클락 노래같네.” 토키가 솔직하게 말했다.

 “응, 아무래도 그걸 들으면서 영감을 얻었으니까.”

 “어쨋든 꽤 괜찬은데.”

 “그래? 뭐, 빈말로라도 고마워.”

 “아냐, 진짜루. 너 재능잇는 거 같아. 좀 더 만이 만들어 봐.”

 

 올리버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 미소를 보는 토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둘은 그대로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올리버는 스퀴스가와 마찬가지로 청명한 푸른색의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토키는 그 눈동자가 자신의 눈과 입술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올리버의 얼굴이 토키에게 조금씩 가까워졌다. 둘의 코가 먼저 맞닿았다. 곧이어 올리버와 토키의 입술이 포개어졌다가 떨어졌다.

 뒤로 물러선 올리버는 토키가 충격받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주춤했다. 토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살짝 혼이 나간 눈으로 올리버를 응시하고 있었다. 

 

 “난, 그, 그─ 게이 아닌데.” 토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미, 미안. 난 니가─ 너도─ 미안해.”

 

 올리버는 당혹감과 죄책감이 뒤섞인 얼굴로 토키에게 거듭 사과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토키와 거리를 벌리려했다. 그러나 토키가 잽싸게 손을 뻗어 올리버의 팔을 붙잡았다.

 

 “도망가지마! 다시 안자봐!”

 “아냐, 너한테 수작 부려서 정말 미안해.”

 “아니 다시 안자보라니까!”

 

 올리버는 할 수 없이 토키의 손에 이끌려 다시 그의 옆에 앉았다. 토키는 초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올리버를 마찬가지로 응시했다. 

 토키가 올리버의 팔을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내려 올리버의 손으로 옮겼다. 올리버의 손 끝에서 기타를 치면서 생긴 굳은 살이 만져졌다. 토키는 마치 점자를 읽는 맹인처럼, 자신의 손 끝으로 그것들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토키는 반대편 손을 올리버의 머리카락으로 뻗었다. 살짝 곱슬거리는 금발머리가 토키의 손가락에 걸쳐졌다. 토키는 떨리는 손짓으로 그의 머리를 쓸어내리다가 올리버의 푸른색 눈동자를 다시 응시했다. 

 

 “한번만 더 해보면 안 대?”

 

 토키의 질문에 올리버는 대답은 하지 못하고 숨만 크게 들이쉬었다. 토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올리버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그리고 올리버의 허벅지 위에 손을 짚어 균형을 잡았다. 토키는 다른 쪽 손을 뻗어 올리버의 턱 끝을 살짝 추켜 올렸다. 토키는 올리버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와 다시 입을 맞췄다.

 올리버가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토키의 목 뒤로 뻗었다. 토키는 올리버의 딱딱한 손 끝이 어루 만진 부위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걸 느끼고, 입을 떼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올리버가 또 도망이라도 갈 세라 양손으로 그의 머리를 붙잡고 다시 입술을 포갰다. 토키가 힘조절을 하지 못하고 세게 덤벼든 바람에 올리버의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토키는 올리버를 내리 누른 자세로 키스를 계속했다. 토키의 황갈색 머리가 흘러내려 올리버의 금발머리와 뒤섞였다.

 마침내 둘의 얼굴이 떨어졌을 때 올리버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너… 게이 아니라며?”

 “아니야. 근데…”

 

 토키가 올리버의 금발머리를 쓸어내리면서 말 끝을 흐렸다. 올리버는 그런 토키가 이루말할 수 없이 귀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올리버가 팔을 들어 토키를 끌어안으면서 다시 키스했다. 그런 애정행각이 수차례 오간 덕에 둘의 바지 앞섬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형태가 되어 있었다. 올리버는 그걸 확인하고 토키의 귓가에 대담한 제안을 속삭였다.

 

 “내 안에 들어와.”

 

 토키는 달리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가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올리버가 토키의 목에 입을 맞추며 그의 불안함을 덜어주려 애썼다. 그리고 토키의 머리로 손을 뻗어 토키가 아직까지 쓰고 있었던 모자를 벗기려했다. 토키가 그 손을 붙잡아 자신의 허리로 가져갔다. 올리버는 토키가 모자를 벗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성향 중 하나로 인정하고 넘기기로 했다.

 

 올리버가 바닥에서 일어나 셔츠를 벗어제꼈다. 토키가 그를 따라 엉거주춤 일어나자, 올리버는 토키를 매트리스 옆으로 데려가 그 위에 자빠뜨렸다. 올리버는 신고 있던 부츠를 벗어버리고, 엎드린 채 토키의 다리 사이로 기어왔다. 그리고 토키의 부츠 또한 벗겨서 자신의 부츠를 벗어놓은 곳에 집어 던졌다.

 올리버가 토키의 벨트로 손을 뻗어 그의 바지를 벗겼다. 그리고 툭 불거진 토키의 브리프 위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올리버가 토키의 브리프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토키가 올리버의 얼굴을 잡아 당겨 그에게 다시 키스했다. 토키의 입술은 올리버의 것에서 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너 정말 키스하는 거 좋아하는 구나?” 올리버의 말에 토키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가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와 속옷 마저 벗어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차림새가 된 올리버를 보고 토키가 조용히 침을 삼켰다. 올리버는 토키의 사타구니가 아직 용솟음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의사를 재차 확인하기로 했다.

 

 “하고 싶지 않으면 얘기해.”

 “그럴리가! 난… 난 지금만큼 내 인생에서 꼴렷던 적이 업서.”

 

 올리버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을 받은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매트리스 옆에 있는 물건정리함에서 콘돔과 로션을 꺼냈다. 올리버는 콘돔을 입에 문 채 토키의 브리프를 벗겼다. 그리고 토키의 반응을 살피면서 느릿느릿한 손짓으로 토키에게 콘돔을 씌웠다. 토키는 굳은살이 박힌 그 손가락들이 어루어 만지는 그 느낌만으로도 그대로 갈 것 같았다.

 올리버가 로션을 뿌리고 토키에게 핸드잡을 하려는 순간 토키가 올리버의 손목을 붙잡아 저지했다. 올리버가 의아한 표정으로 토키를 쳐다보자 토키가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말했다.

 

 “안 대, 손으로 더 만지면… 쌀 것 같애.”

 

 올리버는 눈 앞의 남자가 너무 귀여워서 그에게 다시 한번 키스했다.

 

 “그냥 넣을래?”

 

 올리버의 제안에 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가 토키를 매트리스 위로 눕혔다. 그리고 무릎 걸음으로 토키의 위에 서서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올리버가 토키와 시선을 맞추며 그의 위에 천천히 앉기 시작했다. 

 이내 토키를 전부 받아들인 올리버가 잠시 멈춰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토키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올리버가 토키 쪽으로 상체를 숙였다. 올리버의 금발머리가 토키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토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올리버에게 키스했다.

 올리버는 입술을 떼고 다시 몸을 일으킨 후 조심스럽게 골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긴머리가 박자에 맞춰 찰랑거렸다. 자신이 의도한 각도대로 토키에게 관통당하자 아랫배에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에 올리버가 고개를 뒤로 젖혀 기분좋은 숨을 내쉬었다. 올리버의 허벅지에 토키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올리버가 서서히 오르가즘을 향해 다가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토키가 몸을 일으켰다. 올리버는 토키가 또 키스를 하고 싶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토키는 그대로 올리버를 밀어 그를 매트리스 위로 자빠뜨렸다.

 올리버의 위로 올라간 토키가 그의 손목을 잡아 내리눌렀다. 올리버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토키의 눈빛에서, 그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사뭇 변한 것을 느꼈다. 올리버는 갑자기 육식동물에게 사로잡힌 기분에 전율을 느꼈다.

 토키가 허리를 움직였다. 올리버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토키한테서 아까의 순둥이같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가 왕복운동을 한번 할 때마다 엄청난 기세로 올리버를 몰아붙혔다. 마지막까지 주도하려했던 올리버는 상황이 순식간에 전복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토키의 밑에서 숨만 헐떡였다.

 절정에 다다른 토키가 움직임을 멈추고 사정했다. 토키의 얼굴에 차츰 이전의 온화함이 다시 돌아왔다. 토키는 조심스럽게 올리버의 밖으로 빠져나온 후, 올리버의 위에 엎드려 그와 몸을 포갰다. 

 

 마지막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올리버는 말없이 토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흡을 골랐다. 토키가 올리버의 금발머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사랑해, 스퀴스가.” 토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

 “음?”

 

 올리버와 토키 둘 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당황한 마음에 몸을 벌떡 일으킨 토키는 이내 올리버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아… 어…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왓서.”

 

 올리버는 처음엔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토키를 이해했다. 

 

 “괜찮아. 내가 스퀴스가처럼 생겨서 작업거는 여자들도 엄청 많은 걸.”

 “아니야. 올리버… 진짜 진짜 미안해…”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올리버가 매트리스에서 일어나 토키의 양손을 붙잡고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토키가 비에 젖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올리버를 쳐다보자 올리버가 웃으면서 토키의 뺨을 어루만졌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네가 토키 워투스랑 닮아서 마음에 들었거든.”

 

 올리버의 말에 토키의 가슴이 철렁했다. 토키는 그렇게 격렬한 행위가 오갔지만 편리하게도 아직 그의 머리에 붙어있는 야구모자를 조심스레 다시 고쳐썼다. 

 

 “어… 나도… 달맛다는 말 만이 들어.”

 

 올리버가 피식 웃으면서 매트리스 위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토키를 보며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토키가 다시 엉금엉금 기어가 올리버의 옆에 누웠다. 토키는 올리버와 마주 누운채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음… 넌 토키를 조아하는 거야?”

 “응. 내가 데스클락에서 제일 좋아하는 멤버야.”

 “그래?” 토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다들 스퀴스가가 제일 뛰어난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친구가 그렇게 빛날 수 있는 건 토키가 받쳐주기 때문이거든. 그래서 나는 토키 워투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오, 와우위.”

 

 토키는 얼굴을 붉히며 매트리스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는 자신이 스퀴스가의 얼굴을 한 사람한테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하. 스퀴스가를 닮은 사람이 토키를 닮은 사람이랑 섹스를 하다니, 무슨 팬픽같네.”

 

 올리버의 말에 토키는 어색하게 웃었다. 올리버는 그런 토키를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너 껴안고 자도 될까?”

 

 토키는 해맑게 웃으며 올리버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올리버는 자신에게 안겨오는 토키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품에 안긴 토키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

 

 

 

 

 

 “토키가 이상하게 엄청 행복해 보이는데…”

 “아 뭐, 또 어디가서 새로운 인형이라도 샀나보지.”

 

 토키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온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듯한 미소를 만연에 띄운채 모드하우스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기분이 좋은 게 확연했지만 멤버들은 딱히 토키의 근황을 물어보지 않았다.

 토키는 브런치를 먹고 있는 멤버들 사이에 같이 앉아 과일 조각을 주워먹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나갈거야.”

 “뭐? 가긴 어딜 가? 이따 미팅 있는거 몰라?” 네이선이 토키를 불러세웠다.

 “오, 그냥 나 업시 해. 난 친구 만나러 가야 대.”

 “친구? 너 친구 없잖아.” 네이선이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또 니 상상 속의 친구 말하는 거냐?” 스퀴스가가 비웃었다.

 “아니거든?! 살아잇는 진짜 사람이라고! 새로 사겻단 말야! 나 진짜 가봐야 대.”

 

 토키는 따지고 드는 멤버들을 떼어놓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버렸다. 멤버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토키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았다.

 

 “새 친구라니… 수상한데… 또 어디가서 이상한 놈한테 꿰인거 아냐?” 네이선이 중얼거렸다.

 “토키랑 친한 인간들이 다 그렇지 뭐. 또 어떤 마약쟁이거나 우릴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놈이겠찌.” 피클스가 자신의 커피에 보드카를 섞으면서 토키의 교우관계를 비방했다.

 

 멤버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로의 사생활에 참견하는 것은 참으로 게이같은 일이어서 멤버들 그 누구도 그런 짓을 하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키가 잘못 사귄 친구들 때문에 그들 모두가 심각한 피해를 보는 일을 이전에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모두 이 사안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쉬발 그 광대같은 셰끼랑 밤에 같이 기어들어오면 어떡하냐고!” 머더페이스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쫓아가서 수상한 놈이랑 있으면 족쳐버리자.” 피클스가 말했다.

 “토키를 미행한다.” 네이선이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토키와 그를 미행한 데스클락 멤버들이 도착한 곳은 매사추세츠 어딘가에 있는 한 테마파크였다. 멤버들은 토키와 멀찍이 거리를 유지하면서 토키를 따라갔다.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을 찾는 듯 하던 토키는 입구 근처에 서있던 한 키 큰 금발남자를 발견하고선 야구모자를 꺼내썼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토키를 발견한 그 남자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토키를 반겼다. 둘은 마주 보고 서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저 인간이 그 새 친구인 모양인데…” 네이선이 중얼거렸다.

 “홀리 쉿. 저 자식 스퀴스가랑 똑같이 생겼잖어.” 피클스가 그의 외모를 보고 놀라워했다.

 “쟤가 더 잘솅겼는데.” 머더페이스가 흥미로워하며 말했다.

 “어딜 봐서?” 스퀴스가가 발끈했다.

 

 남자가 손짓을 하면서 토키에게 무어라 말하자 토키가 웃었다. 남자는 토키의 웃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팔을 뻗어 토키의 손을 잡았다. 토키는 그 행동에 약간 놀란 듯 했으나 이내 토키 자신도 손에 힘을 주어 남자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토키는 그의 손을 이끌고 함께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멤버들은 그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얘들아. 쨰네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닌 거 같어.”


 다들 어렴풋이 느꼈지만 소리내어 지적하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사실을 피클스가 총대를 매고 말했다.

 

 “후… 난 항샹 토키가 클로짓 게이라는걸 알고 있쎴어.”


 머더페이스가 되도 않는 폼을 잡으며 말했다. 네이선과 피클스가 머더페이스를 힐긋 쳐다보았지만 그에게 별다른 태클은 걸지 않았다.

 

 “뭐, 암튼 글케 됐네. 토키는 게이야.” 피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머야 이게? 그래서, 지금 토키가 나랑 달믄 놈이랑 데이트라도 하러 온 거란 말이야?” 스퀴스가가 인상을 구겼다.

 “이거 진짜 이상하다.” 네이선의 눈이 흐려졌다.

 “내가 있는 데 왜 굳이 나랑 달믄 딴 놈을 찻는 거야?”

 “거야 니가 토키한테 게이 안 해주니까 그렇지.” 피클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그럿다고 저런 잡놈을 만나고 다녀? 존나 믿을 수가 업구만.” 

 

 스퀴스가가 팔짱을 끼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토키와 그의 데이트남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인제 어쩌쥐?” 피클스가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저 놈이랑 못 만나게 해야 돼.” 스퀴스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웨? 토키가 누구랑 데이트를 하던 그건 우리가 알 빠 아니잖어.”

 “그 만나는 놈이 나랑 똑갓치 생긴 놈이면 내 알 바야! 이거 존나 기분 이상하다고!” 

 “똑같지 않아. 쟤가 더 잘솅겼다니까.” 머더페이스가 말했다.

 “그건 그렇더라.” 피클스가 동의했다.

 “닥쳐!!”

 “썅. 알았다, 알았어. 일단… 일단 돌아가서 그때 그 광대놈한테 써먹었던 방법을 또 써보자고.”

 

 네이선이 그들의 대화에 마무리를 지었다. 멤버들은 모드하우스로 돌아와 인터벤션을 준비하며 각자 토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테마파크에서 파는 온갖 악세사리로 치장한 토키가 데이트에서 돌아왔다. 토키는 레크리에이션 룸에 앉아있는 멤버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 이 친구업는 불쌍한 인생들아. 너넨 오늘도 하루종일 여기 짱박혀잇섯지?”

 “이걸… 이걸 어떻게 시작하지?” 네이선이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토키. 그 새끼랑 헤어져.” 스퀴스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놀란 토키는 들고 있던 헬륨 풍선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풍선은 천장 위로 날아가 샹들리에의 가시장식에 찔려 터져버렸다.

 

 “머? 올리버를 말하는 거야? 니들이 걔를 어떠케 알아?”

 “그 새끼 이름이 올리버냐? 이름부터 존나 촌스럽네.”

 “올리버에 대해서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토키가 스퀴스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거다!!” 스퀴스가도 지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언성을 높혔다.

 “니가 올리버에 대해서 멀 안다고 떠들어!!”

 “알 만큼 다 알 거든?! 넌 그냥 걔가 날 달마서 만나는 거 잔아!!!”

 

 순간 정적이 흘렀다. 토키는 스퀴스가를 한 대 쥐어패고 싶은 걸 참으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아니거든… 걔가 너보다 성격도 더 착하고 더 재밋다고…그리고 내 얘기도 얼마나 잘 들어주는데… 스퀴스가 니랑 있을 때랑은 다르게 걔랑 있으면 난… 진짜로 행복해…”

 

 스퀴스가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토키를 쳐다보았다. 토키는 스퀴스가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쏘아붙였다.

 

 “그리고 너보다 훨씬 더 잘생겻서.”

 “아니라고!!!”

 “맞거든!!! 백배 천배는 더 잘생겼거든!!!”

 “이런 씨발, 다 때려쳐!”

 

 스퀴스가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빈 술병을 집어던져 깨트리고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토키는 스퀴스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또 누구 할 말 남은 사람 잇서?!”

 

 토키가 감히 있으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남은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어… 사실 우린 니가 걔랑 데이트하던 말던 상관 안 해.”

 

 네이선이 자신이 들고 있던 편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백지였다. 다른 멤버들도 네이선에게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건 니들이 상관 할 바가 아니니까!” 

 

 토키는 앙칼지게 소리치고는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

 

 

 

 

 토키가 올리버와 데이트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가 모드하우스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멤버들과의 모임에서 빠지는 일도 종종 발생하였다. 그리고 멤버들과 있는 동안엔 그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세상만사가 다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들이 짓고 다니는 그 멍청한 미소를 항상 얼굴에 달고 다니면서 디즈니 애니의 주인공처럼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당연하게도 멤버들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어느 한 명의 짜증이 부쩍 늘었다.

 

 “왜 니들 밖에 업냐?”

 

 모드하우스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주방으로 온 스퀴스가가, 식탁에 둘러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멤버 세명에게 물었다.

 

 “토키는 데이트하러 갔어.” 피클스가 커피를 홀짝이며 대답했다. 

 “또?!”

 

 가뜩이나 찌푸려져있던 스퀴스가의 얼굴이 더 험악하게 구겨졌다. 요즘들어 그의 눈가엔 주름살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걘 왜 찾는뒈?”

 “내가 걜 언제 찻앗다 그래?”

 

 스퀴스가가 신경질을 내면서 커피 머신 옆으로 걸어갔다. 커피컵을 꺼내기 위해 찬장을 열자, 그 안에는 스퀴스가의 두개골 모양을 본 뜬 커피컵이 두 개 놓여져 있었다. 스퀴스가는 그 컵으로 누가 커피를 마시곤 했던지 생각해내고 그대로 찬장문을 쎄게 닫아버렸다. 머더페이스가 욕지거리를 하며 주방을 나가는 스퀴스가를 보고 혀를 찼다.

 

 

 어쨌든 멤버들이 좀 눈꼴시려워하는 것 말고는 토키가 데이트를 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는.

 

 멤버들이 오랜만에 스튜디오에서 차기 앨범을 녹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그것은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레코딩은 원래도 진척이 더딘 작업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부스 안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토키를 나머지 멤버들이 시큰둥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토키의 연주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네이선이 녹음을 중지시키고 토크백 마이크로 토키에게 말했다. 

 

 “토키. 니 기타 너무… 너무 행복하게 들린다.”

 

 네이선의 지적에 토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거야 내가 행복하니까 그럿치.”

 “토키, 데스메탈을 하려면 행복하면 안 돼.” 네이선이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맞어. 데스메탈은 인생이 씹창난 인간들을 위한 노래라고!” 피클스가 맞장구쳤다.

 “니 혼쟈 행복해하는 꼬라지 보는거 죤나 짜증나!” 머더페이스가 따라서 승질을 냈다.

 

 네이선의 지적을 선두로 멤버들이 너도나도 언성을 높이며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토키에게 표출했다. 다들 토키의 삶의 질이 올라간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토키는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럼 어쩌라고?!”

 

 토키가 거칠게 문을 열고 부스 밖으로 나왔다. 

 

 “언제는 나보고 징징거린다고 머라하더니, 너넨 내가 행복해도 불만이냐? 내 인생에 보태준 것도 업는 놈들이! 조까 이 개새끼들아!”

 

 토키는 매고 있던 기타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리고 소파에 놔뒀던 자신의 데스폰을 집어들고는 올리버에게 전화를 걸면서 스튜디오를 나가버렸다. 스퀴스가가 토키가 나간 방향을 가르키며 멤버들에게 피력하기 시작했다.

 

 “아? 봣지? 내가 저넘들 그냥 나두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햇잔아!”

 “니가 정확히 그렇게 말하진 않았는데… 뭐 어쨌든… 문제가 생긴 것 맞는 거 같다. 토키가 그 가짜 스퀴스가 놈이랑 사귀는게 우리 밴드 전체에 피해를 주고 있어.”

 

 네이선의 말에선 일말의 양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그 자식이랑 헤어지게 만들어야 대.” 스퀴스가가 이를 악물었다.

 “그걸 어떻게 하지?” 네이선이 물었다.

 “그냥 그 놈을 죽여버리자.” 피클스가 말했다.

 “그래.” 스퀴스가가 동의했다.

 “워워워, 잠깐만. 누굴 죽인다고?”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딕 너블러가 의자를 뒤로 돌려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토키가 사귀고 있는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야? 그러면 토키가 상처 받을 거 아니야.”

 “걘 그거보다 더 심한 일을 격고도 지금까지 잘 살고 잇어.”

 

 스퀴스가가 코웃음을 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너블러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설설 저었다.

 

 “내가 너네를 막을 힘은 없다만, 아무튼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설교하지마. 우린 그딴 거 필요업스니까.” 스퀴스가가 손을 내저었다.

 “우리한테 필요한 건 총이야!”

 

 피클스가 눈을 빛내며 클라카티어 중 한명에게 물었다.

 

 “야, 토키 어디갔어?”

 “연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주인님.”

 

 클라카티어가 연인이라고 했을 때 스퀴스가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지금이 기회야. 쫓아가서 그 짜가새끼를 죽여버리자.” 피클스가 말했다.

 “너! 가셔 총 가져와!” 머더페이스가 클라카티어에게 명령했다.

 “오늘 밤, 우리는 밴드메이트의 남자친구를 죽일 거다.” 

 

네이선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며 멤버들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퇴장했다.

 

 “오 세상에, 찰스는 왜 하필 이럴 때 출장을 간 거야?” 너블러가 휴대폰에서 찰스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면서 초조하게 대기신호를 기다렸다.

 

 

 

*

 

 

 “이 느즌 시간에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 뛰쳐나오는 와중에도 야구모자는 잊지 않고 챙겨 쓴 토키가 올리버에게 말했다.

 “괜찮아. 그냥 니 얼굴 볼 수 있어서 좋은 걸.” 올리버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토키와 올리버는 시내외곽에 위치한 버줌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주차된 차 뒤에 몸을 숨긴 데스클락 멤버들이 그런 둘의 모습을 숨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멤버들의 손에는 제각기 다른 종류의 총이 쥐어져 있었다.

 

 “얘들아.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는데… 우린 여태까지 단 한번도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어.” 네이선은 자동소총을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긴장된 기색이 만연했다. 

 “맞어. 우린 존나 착하게 살았따고!” 핸드건을 들고 있는 피클스의 손이 덜덜 떨렸다.

 “뭐야, 니들 여기까지 와놓고 쫄은 거냐? 이 한심한 셰키들.” 머더페이스가 혀를 찼다. “할 수 없지. 저자쉭은 내가 쳐리한다.”

 

 머더페이스가 쏘우 샷건을 장전하면서 자진했다. 그러나 피클스가 갑자기 뭐가 생각난듯 급하게 머더페이스를 붙잡았다.

 

 “잠깐, 잠깐! 저 자식 코 앞까지 가서 총을 쏘는 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어.” 

 “흠. 니 말이 맞아. 저 잘솅긴 얼굴에 총질을 하는 건 너무 아깝지.” 머더페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 소리가 아니고… 니가 지금 쩌기에 가서 저 새낄 죽이면, 쩌기 있는 사람들이 다 널 볼 거 아니야? 그러면 넌 3초 안에 체포돼서 전기사형 당하거나, 뭐 그럴 걸.” 피클스가 목을 긋는 시늉을 냈다.

 “오 쓋. 그 솅각은 못 했네.”

 

 피클스 덕에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머더페이스는 다시 조신하게 차 뒤에 숨었다.

 

 “저 놈이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렸따가 혼자 있을 때 죽여버리자.” 피클스가 말했다.

 “근데 토키가 져 놈 집에 같이 따라가면 어떡해?” 머더페이스가 물었다.

 “에, 그럴 수도 있겠꾸나.”

 “내가 토키한테 전화를 해서 모드하우스로 불러내지.”

 

 네이선이 데스폰을 꺼내서 토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리버와 얘기를 하던 토키는 벨소리를 듣고 데스폰을 꺼내들었다가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응답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폰을 엎었다.

 

 “아니, 이놈새끼가 그냥 전화를 끊었어!”

 “아예 폰을 꺼버렸는뒈.”

 

 피클스가 자신의 폰으로 토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려했으나 신호가 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멤버들에게 전화를 받은 토키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올리버가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서 토키의 손을 잡았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스퀴스가의 인상이 점점 더 구겨졌다. 머더페이스가 혀를 찼다.

 

 “저 바퀴벌레 한썅들을 좀 봐. 이대로다간 우린 저 셰끼가 토키를 따먹는 걸 보게 될거야. 아니면 토키가 저 셰낄 따먹던가.”

 “아 그딴 소리 하지 말라고! 토 나오니까!” 스퀴스가가 짜증을 냈다.

 

 토키와 올리버는 손을 맞잡은 채로 서로를 응시하면서 무어라 말을 주고 받다가 테이블 위로 상체를 숙여서 입을 맞추었다. 스퀴스가는 기다리는 것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더는 못 봐주겟다. 저 새낀 지금 죽어야 대.”

 

 스퀴스가가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 올리버를 향해 겨누고 장전했다. 스퀴스가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누군가의 손이 라이플의 총구를 위로 들어올렸다.

 

 토키와 올리버가 앉아있던 창문이 박살이 나면서 유리가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총에 맞은 사람은 없었다. 총소리를 들은 토키와 올리버를 비롯한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테이블 아래로 몸을 피했다.

 스퀴스가가 자신의 라이플을 붙잡고 있는 찰스를 째려보았다.

 

 “제군들, 히트맨 놀이는 여기까지.” 

 

 토키는 헬기 소리를 듣고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주차장에 서 있는 웬수같은 밴드 멤버들을 발견했다. 토키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강 눈치를 채고 다시 테이블 아래로 내려와 올리버의 손을 붙잡았다.

 

 “여기서 나가자.”

 

 토키는 올리버를 데리고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밴드 멤버들이 그들보다 먼저 식당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 딜도새끼랑 어딜 가려고!”

 

 가장 먼저 입장한 스퀴스가가 토키와 올리버의 앞을 막아섰고, 나머지 멤버들이 그 뒤를 이었다. 찰스는 여차하면 발생할 사태에 대비해 식당 안에 클라카티어들을 배치시켰다.

 테러가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올리버는 갑작스런 데스클락의 행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진짜 스퀴스가 스퀴겔프잖아. 세상에, 데스클락 멤버들이 다 와 있어!”

 

 자신의 우상들을 눈 앞에서 보게 된 올리버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데스클락 멤버들을 쭉 훑어보다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토키만 빼고. 아, 아무튼 이게 무슨 일이지 대체?”

 

 토키는 사실을 밝혀야할 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토키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쓰고 있던 야구모자를 벗었다. 자신이 사귀던 남자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올리버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가 진짜 토키였단 말이야? 맙소사. 내가 여태까지 토키 워투스랑 데이트를 했다고?”

 “그래, 이 개자식아. 그리고 그건 지금 여기서 끗나는 거다. 니 목숨이랑 같이.”

 

 스퀴스가가 피클스의 총을 빼앗아 올리버에게 겨눴다. 토키가 뛰어들어 스퀴스가와 올리버 사이를 가로막았다.

 

 “안 대!! 너 미쳣서?!”

 “토키.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거야. 니가 이새끼랑 만나기 시작한 이후로 니 기타가 얼마나 후져졋는지 알아?”

 “내 걱정하는 척 하지마! 넌 그냥 내가 행복한 게 실어서 이러는 거잔아!!”

 “니 맘대로 생각해. 어쨋거나 넌 둘 중 하나에서 골라야 대. 저 자식이야 아니면 나야? 아니, 밴드, 밴드! 저 자식이야 아니면 밴드야?”

 

 토키와 스퀴스가는 잠시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로 팔을 뻗어 올리버의 손을 잡았다. 스퀴스가는 그걸 보고 코로 긴 숨을 내쉬었다.

 

 “그게 니 선택이냐?”

 

 토키가 단호한 눈빛으로 스퀴스가를 응시했다. 스퀴스가는 겨누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엔 이루말할 수 없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스퀴스가는 자리를 박차고 혼자 식당을 나가버렸다.

 찰스가 무전기를 꺼내서 밖에 있는 클라카티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를 빼고는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움직이거나 입을 열지 못했다.

 

 “에… 그… 우리가 죽이려고 해서 쏘리.” 피클스가 먼저 침묵을 깨고 올리버에게 말했다.

 “이 나쁜넘들아!! 어떠케 내 남자친구를 주기려고 할 수가 잇서?!”

 

 토키가 피클스의 멱살을 붙잡았다. 올리버가 토키를 진정시키며 그를 피클스에게서 떼어놓았다.

 

 “토키, 난 괜찮으니까 진정해! ” 올리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사실 난 꽤 영광스러운걸. 스퀴스가 본인이 날 직접 죽이려고 하다니. 심지어 그걸 네가, 토키 워투스가 막아 줬다고! 나 전생에 미국 독립이라도 시켰나봐.”

 “잘솅긴 게이로 태어나면 이런 일도 솅기는 거지.” 머더페이스가 올리버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야, 됏스니까 니네들 빨리 다 꺼저.”

 

 토키가 머더페이스를 밀쳐내며 차갑게 말했다. 찰스가 무전기를 내려놓고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밴드를 그만 두려는 건 아니겠지?”


 찰스가 올리버를 흘끔거리며 토키에게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짐작하자면, 찰스의 말 앞에는 ‘설마 이런놈 때문에’ 가 생략되어 있었다.


 “모르겟서. 하지만… 어쨋든 지금은 그 새끼랑 갓치 연주를 할 수 잇슬 것 갓지 안아.” 토키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그래, 일단… 어떻게 될 지 한번 지켜보자. 언제라도 괜찮으니 연락하고.” 찰스가 어색한 손짓으로 토키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토키는 나머지 멤버들에게 엿먹으라는 표시로 주먹을 가볍게 흔들고는 올리버를 데리고 식당의 후문으로 향했다. 올리버는 자신을 이끄는 토키를 홀린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난 아직도 네가 토키 워투스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이게 다 꿈은 아닐까?”

 “꿈인지 아닌지는 니네집에서 학인해보자.” 토키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

 

 

 

 

 토키가 올리버와 동거를 시작한지 한달이 넘게 지났다. 백수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토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오에 가까운 시각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이부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침대에서 일어난 토키는, 부엌의 탁자 옆에 앉아있는 올리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올리버의 긴 금발머리는 어디론가로 가고 없었다. 그의 머리는 투블럭으로 짧게 정돈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다채로운 색이 섞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올리버는 스퀴스가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다. 낯선 올리버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멍하게 서있는 토키를 보고 올리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토키, 일단 앉아봐. 할 얘기가 있어.” 올리버가 예의 바른 손짓으로 자신의 맞은 편에 있는 의자를 가르켰다.

 “어… 구래.”

 

 토키는 올리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자리에 앉았다. 올리버가 토키의 앞에 놓여져있던 컵에 커피를 따라주었다.

 

 “머리 잘랏네.”

 “응. 이러고 있으니 스퀴스가랑 하나도 안 닮았지?”

 

 토키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올리버가 정확하게 집어내는 바람에 토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올리버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에, 니가 날 또 스퀴스가라고 부르더라고.”

 “내가 그랫서?”

 

 토키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커피컵을 만지작거렸다. 왜 주책맞게시리 그 거지같은 인간의 이름이 자꾸 입으로 새어나온단 말인가?

 

 “내가 지난주에 봤던 밴드 오디션, 붙었다고 연락왔어. 그래서 데스클락 트리뷰트 밴드는 이제 그만 둘 거야. 당연히 더 이상 스퀴스가를 흉내내지도 않을 거고.”

 

 올리버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난… 이제 내 정체성을 찾아야 돼.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야 한다고. 토키, 난 널 정말 사랑하지만, 네가 언제까지고 나를 스퀴스가의 대용품으로만 생각한다면 난 너랑 함께할 수가 없어.”

 “그런 걱정하지 안아도 돼! 난 올리버 너를 사랑하는 거지, 니가 스퀴스가를 달마서 좋아한 게 아니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올리버가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토키를 바라보았다. 토키는 올리버를 다시 한번 더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긴 머리가 사라지고 나니, 올리버는 정말 스퀴스가와는 전혀 닮아있지 않았다. 토키는 여태까지 올리버와 함께 하는 동안 그에게서 봤던 사람과 지금 눈 앞에 있는 올리버가 자신에게 동일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토키는 자신이 새로운 사람과 사랑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토키는 줄곧 과거의 스퀴스가와 사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직 자신을 신경써주던 스퀴스가와. 자신을 인정해주던 스퀴스가와.

 

 토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 토키의 눈물을 닦으며 그를 안아주었다. 토키가올리버의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 정말 스퀴스가랑 하나도 안 달맛구나.”

 “슬프지만 그래.”

 “니가 그새끼보다 백배 천배는 더 조은 녀석인데, 난 내가 외 아직도 그 딜도새끼를 조아하는지 모르겟서.”

 “그게 인생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 누굴 사랑할지를 결정할 수가 없다는 거.”

 

 올리버가 한숨을 내쉬면서 토키의 등을 쓰다듬었다. 

 

 “토키. 넌 데스클락으로 돌아가야 돼. 네가 날 밴드 대신 선택해줬을 땐 정말 기뻤지만… 사실 정말 그래선 안됐다고 생각해.”

 “돌아가라고? 널 주기려고 한 그 개자식들한테?”

 “토키, 몇 번을 얘기하지만 난 정말 그 일 신경 안 써. 내 생각은 안해도 돼. 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봐. 사실 의도만 놓고 보면, 그건 꽤 의리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아? 널 나한테 빼앗길까봐 그랬던 거 잖아. 그것땜에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생각해준다는 건, 어쨌든 특별한 거지.”

 “니가 그자식들을 멀라서 그래.” 토키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래도 올리버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새끼들이 천하의 쌍놈들이긴 하지만 토키의 인생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위치에 가장 가까운 녀석들인 건 확실했다. 지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동기에서라도, 그들만큼 토키의 인생에 깊게 관여 하려 했던 사람들이 달리 있었는가? 토키는 만약 혼자 남게 된다면, 함께 할 때 항상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삶에 있는 생활을 매우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토키의 마음에 가장 걸리는 건 스퀴스가였다. 토키가 올리버의 손을 잡았을 때 스퀴스가가 지었던 실망하는 표정이 계속해서 눈 앞에 아른거렸다.

 

 “뭐, 니 말이 맞긴 한 것 갓지만… 그래도 이 난리를 피워노코 다시 돌아가기엔…”

 “네가 돌아간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걸? 데스클락은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걔네들이 요즘에 연주하는 거 들어봤어? 진짜 별로야.”

 

 올리버의 말이 빈말이더라도 토키는 기분이 좋았다. 토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보고 올리버는 토키를 계속 북돋았다.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모집한다는 얘기도 안 하는 걸 보면, 데스클락도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해.”

 “정말 그러케 생각해?”

 “당연하지. 너같은 천재 기타리스트를 또 어디서 구하겠어?”

 

 스퀴스가는 항상 토키에게 무관심한 척 했지만, 같이 연주를 해보면 그것은 다 허세에 불과하고 사실은 스퀴스가가 자신을 지대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토키는 금새 알 수 있었다. 둘은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서로의 잠재력이 가장 최대로 발휘될 수 있는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토키가 없을 때의 스퀴스가는 최고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토키만큼 스퀴스가가 연주를 잘하게 할 수 없었다. 그들 둘 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토키는 올리버와 함께 하는 모든 활동을 다 좋아했지만, 그와 함께 연주하는 것만큼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올리버와 연주하는 것은 스퀴스가와 연주하는 것과 전혀 비슷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화감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화감과 함께 찾아오는, 진짜 스퀴스가가 보고 싶어지는 그 기분을 애써 외면해야했다. 그도 기타를 칠 때마다 토키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토키는 결심을 내렸다. 그는 올리버의 품 안에서 일어나,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던 데스폰을 집어들어 찰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찰스. 나 돌아갈 준비 됏서.”

 

 찰스는 다른 질문을 일체 하지 않고 곧장 올리버의 집에 마중나갈 차를 보냈다. 토키는 올리버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그의 집에서 사는 동안 늘어놓았던 자신의 살림살이를 정리해서 가지고 나왔다. 

 클라카티어가 차문을 열어주었다. 토키는 헤어질 순간이 왔다는 게 실감되었다. 이제 정말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토키를 보내는 올리버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토키의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연락할게.” 토키가 애써 밝게 말했다.

 “하하, 그래. 근데 그걸 데스클락이 좋아할지 모르겠다.”

 “그 새끼들은 다 조까라고 해.”

 

 토키는 올리버의 뺨에 가볍게 키스하는 걸로 헤어짐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후다닥 차에 올라타버렸다. 올리버의 슬퍼하는 모습을 더 볼 수가 없어서, 토키는 오는 내내 한번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

 

 

 

 “진짜 무슨 바이킹들이 살던 곳처럼 됐는데. 존나 브루털하군.”

 “내가 후회 안 할 거라고 했쟎아!”

 

 재건축이 끝난 모드하우스를 네이선과 머더페이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둘러보며 말했다. 

 데스클락 멤버들은 토키가 사라지고 난 후에 느껴지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지난 몇 주 동안 여러 곳에 막대한 양의 돈을 낭비했는데, 그 중에는 모드하우스를 북유럽 나무 건축물로 리모델링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멤버들은 기분전환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닥터 트윙클팃은 이 행동양상이 토키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멤버들의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고, 네이선은 이에 대해 ‘게이같은 소리하지마라’ 라고 일갈했다.

 

 “어떻게 생각하냐, 스퀴스가?”

 “뭐… 괜찬네.”

 

 스퀴스가는 바뀐 인테리어를 둘러보는둥 마는둥 하더니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곰가죽이 깔린 소파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그 (중소규모 크기 나라의 GDP) 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다니까. 이게 우리가 밴드를 만들고 나서부터 여태까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라고.”

 

 네이선의 말은 점점 단순한 감탄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보상하려는 듯한 느낌 마저 풍기는 발언이 되어가고 있었다. 스퀴스가는 무미건조하게 기타를 뚱땅거리며 네이선의 말을 한 귀로 대충 흘려들었지만, 그의 말 중에 스퀴스가의 머릿 속에 남아 여운을 남기는 어느 한 구절이 있었다. 밴드를 만들고 나서부터 여태까지 한 일 중에 제일 잘 한 일. 그 문장을 곱씹었을 때 스퀴스가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건 어느 한 사람이었다.

 

 “얘들아! 토키가 돌아왔어!”

 

 모드하우스로 돌아온 토키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피클스였다.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다. 스퀴스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그의 무릎에서 기타가 땅으로 떨어졌다. 복도에서 토키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두운 유년시절을 회상시키는 구조로 변해버린 모드하우스 내부를 둘러보며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멤버들이 토키를 향해 달려가 그를 애워쌌다. 피클스가 토키의 어깨 위에 팔을 올리고 그를 요란하게 흔들었고 네이선과 머더페이스가 그 곁에 섰다. 스퀴스가는 그들 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래, 집 나갔던 탕자가 돌아오셨구만.” 머더페이스가 잘난 척을 하며 말했다.

 “토키!! …우린 네가 전혀 보고 싶지 않았어. 그리워하는 건 게이같은 거니까.” 네이선이 토키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가 이내 기쁨을 감추려고 무던하게 애를 쓰며 둘러댔다.

 “그때 그 자식이랑은 어떻게 된 거야?”

 

 피클스의 질문에 스퀴스가가 귀를 곤두세웠다. 토키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헤어졋서.” 

 “하! 그럴 줄 알앗다.”

 

 스퀴스가가 득의양양해하며 웃었다. 토키가 스퀴스가를 다시 보는 순간 느꼈던 반가운 마음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 보통 이럴 땐… 다음엔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라고 해야겠지만… 너 같은 경우엔… 모르겠다. 그 자식이 일종의 스퀴스가 상위호환이었잖냐.”


 네이선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거의 동의한다는 표정을 짓자 스퀴스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 새낀 그냥 남자 꼬시려고 내 흉내나 내던 게이놈이엇서.” 스퀴스가가 독설을 퍼부었다.

 “헤, 그건 그뢰. 토키는 그거에 넘어간 거고.”

 

 피클스의 말에 멤버들 모두가 웃었다. 토키는 자신이 지옥 구덩이로 다시 발을 들였다고는 생각을 했지만 돌아온지 1분도 안돼서 이새끼들이 이렇게 좆같아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토키는 특히 스퀴스가를 향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행동거지를 보니, 그는 토키가 있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고 살았던 모양이었다. 토키는 스퀴스가도 자신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게 한없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스퀴스가가 그럴 턱이 없었다. 항상 그랬다. 그들의 관계는 결코 동등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토키에게 있어서 스퀴스가는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이었으니 저울은 항상 스퀴스가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들이 함께 해왔던 수많은 나날들동안 스퀴스가도 토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부정할 수가 없을텐데, 그런만큼 토키 또한 스퀴스가에게 중요한 사람이길 기대했던게 그렇게 이기적인 바람이었던가? 토키는 데스클락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던 게 거의 후회되려고 했다. 

 

 “너넨 다 개새끼들이야!”

 

 토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멤버들을 밀치고 자신의 방으로 뛰쳐들어가버렸다. 그들의 짧은 재회는 그렇게 토키가 상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저놈 자식이 다시 불행해졌으니까 메탈같은 메탈 좀 해보겠네.” 네이선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좋은 메탈리안은 불행한 메탈리안뿐이야.” 피클스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퀴스가는 멤버들을 따라서 웃었으나 어쩐지 가슴 한켠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기분을 애써 마음 깊은 곳에 파묻고 무시했다.

 

 

 

 

**

 

 

 

 

 스퀴스가는 모든 것이 다시 예전 대로 돌아왔으니, 이제 토키의 화만 풀리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토키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림자같이 스퀴스가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거나, 그가 연주하는 걸 구경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퀴스가와 같은 공간에 있게 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던 스퀴스가도 토키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등을 돌려서 장소를 나가는 상황을 몇 번 마주 하자 슬슬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모두가 한 공간에 모여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순간이었다. 스퀴스가가 자신의 깁슨을 들고 기타리스트들이 서기로 한 위치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토키는 스퀴스가를 그대로 지나쳐 스퀴스가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섰다. 찰스와 네이선이 토키에게 그 사실을 지적했지만 토키는 여기서 연주하면 소리가 안들리냐며 막무가내를 부렸고, 결국 모두가 토키를 교정하는 걸 포기했다.

 

 초장부터 삐걱대기 시작한 리허설은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도 순탄케 흘러가지 않았다. 기타 파트에서 튄 불협화음에 멤버들 모두가 토키를 쳐다보았다. 토키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을 쳐다봤다. 처음에 몇 번 발생한 불협화음은 사소한 수준이었지만 이번 것은 꽤 치명적이었다.

 참다 못한 스퀴스가가 먼저 연주를 중지했고 다른 멤버들도 모두 그를 따라 동작을 멈췄다. 스퀴스가가 토키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토키는 얼굴을 붉힌 채 스퀴스가의 시선을 피하려 애쓰고 있었다.

 

 “너 그 때 이후로 한번도 기타 잡은 적 업지?”

 

 스퀴스가의 질문에 토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토키는 원래도 연습을 잘 안했기 때문에 지금 실수를 하는 이유가 연습부족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스퀴스가는 원인이 다른 데에 있다고 짐작했다.

 

 “정신을 어따 파는 거야? 이따구로 할 거면 왜 돌아왓냐? 어?”

 

 스퀴스가가 한번 더 공격적인 말투로 토키를 몰아붙혔으나 토키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같으면 한마디도 안 지고 말대꾸를 했을텐데 여전히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 토키를 보고 스퀴스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스퀴스가가 손을 뻗어 토키를 밀쳤다.

 

 “그냥 밴드 때려치고 그 새끼한테 돌아가지 그래? 가서 둘이 게이 꽃집이나 차려!”

 

 이 말만큼은 토키도 그냥 넘기지 못했다. 토키는 그제서야 스퀴스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조까!”

 

 토키가 기타를 벗어 바닥에 내던지고 스퀴스가에게 덤벼들었다. 스퀴스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싸움을 받아들였다. 각자가 쌓아왔던 모든 슬픔과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하 시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네이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토키 쟤는 대체 웨 저러는 거야? 돌아오고나서부터 깨속 저런 식이잖어.” 피클스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밴드에서 짤라버릴 걸 그랬네.” 

 

 불평을 토로하는 네이선과 피클스의 옆에서 말없이 토키를 쳐다보던 머더페이스가 입을 열었다.

 

 “문졔가 뭔지 알겠어...” 네이선과 피클스가 머더페이스를 바라보았다. “샤랑이 쉭어버린 거야.”

 

 머더페이스의 말에 네이선과 피클스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뭐?”

 “난 쟤네랑 같은 기타리스트니까, 우리가 연쥬할 때마다 항샹 느낄 슈 있었어…” 머더페이스의 표정이 한없이 느끼해졌다. “토키의 스퀴스가를 향한 샤랑을…”

 

 그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여태까진 토키가 스퀴스가를 죰 미워하긴 해도 또 그만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슈 이쎴다고…”

 

 머더페이스가 말을 이어갈 수록 네이선과 피클스의 눈썹이 점점 이마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제는 스퀴스가를 싫어하는 마음이 더 커져셔, 그 균형이 무너져 버린거야.” 

 

 머더페이스가 말을 마치고 엉겨붙어있는 토키와 스퀴스가를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게이같은 얘기다”. 네이선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머더페이스를 쳐다봤다.

 “저 둘이 화음을 맞추게 하려면, 토키가 다시 스퀴스가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돼.”

 

 머더페이스의 말에 네이선과 피클스는 기타리스트들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토키에게 헤드락을 당하던 스퀴스가가 토키의 머리털을 한웅큼 뜯어냈다.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뒈…” 피클스가 가망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썅. 저 망할 애새끼는 왜 게이가 돼서 우릴 이렇게 귀찮게 하는건지…”

 

 네이선이 토키를 보면서 짜증을 내다가 불현듯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야, 그러면… 스퀴스가를 그 때 그 짭퉁짓하던 놈처럼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 토키는 그 자식을 좋아했잖아.”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인뒈!” 

 

 피클스가 반색했다.

 

 “근데 걔가 어떤 놈이었더라?”

 “어…”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일단 스퀴스가처럼 생겼었지…” 네이선이 말했다.

 “더 잘솅겼었다고.” 머더페이스가 덧붙혔다.

 “그럼 그냥 스퀴스가를 더 잘생기게 만들면 되는 건가?”

 “아, 아! 토키가 그 자식이 좀 더 성격이 착했따고 했떤 거 같음. 그니까 스퀴스가 보고 착하게 굴라고 하면 돼.” 피클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스퀴스가가 그런 게이같은 짓을 할리가 없잖아.” 네이선이 실소했다.

 “그치만 우리는 토키가 스퀴스가한테 게이가 되도록 하려는 거잖어. 그럼 스퀴스가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해야 하는거 아녀?”

 “그냥… 그냥 그건 잊어버려. 성격을 어떻게 하는 건 불가능 해.”

 

 네이선이 여전히 치고박고 싸우고 있는 토키와 스퀴스가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 개 어려워!” 피클스가 마땅히 다른 걸 생각해내지 못하고 좌절했다.

 “얘들아. 이게 이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고. 그냥 걔네들이 어떻게 샤랑에 빠졌는지만 알면 돼.” 머더페이스가 그들을 독려했다.

 “그럼 그냥 토키한테 직접 물어보는게 빠르겠따.”

 

 피클스는 스퀴스가를 바닥에 엎어트린채 압박하고 있는 토키의 옆으로 다가갔다. 스퀴스가는 반쯤 의식을 잃은 듯 했다.

 

 “토키. 지금 이런 걸 물어보는게 좀 이상하지만… 그래도 물어볼꺼야. 그 스퀴스가 흉내내고 다니던 놈 있었잖어?”

 “올리버 말하는 거야?”

 “그런 이름이었나? 뭐 어쨌든 걔.”

 “걔가 외? 또 시발 개같은 게이 농담하면 니 머리털을 한가닥도 남김업시 다 뽑아버릴거야.” 토키가 이를 갈았다.

 “지, 진정해… 그냥 너네가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서 그래.”

 

 피클스가 토키한테서 약간 거리를 벌리며 두 손으로 자신의 드레드를 매만졌다.

 

 “음… 그냥… 클럽에 갔는데, 걔네 밴드가 우리 음악을 연주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공연 끝나고 내가 술을 사줬어.”

 “오, 그뢰? 웨? 걔가 웨 니 관심을 끌었는데?”

 “외냐면, 기타를 잘 쳣고… 그리고… 음… 걔가… 으응…”

 “걔가 스퀴스가를 닮아서.” 피클스가 토키 대신 문장을 마무리해줬다.

 “닥쳐.” 토키가 얼굴을 붉혔다.

 “뭐 어쨌든, 니가 술을 사줬고. 그래서?”

 “그래서 얘기를 좀 나누다가, 나중에 걔네 집으로 가서…”

 

 토키가 말 끝을 흐렸지만 피클스는 이번에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휘파람을 불었다. 토키는 당황스러움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외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보는데?”

 “암 것도 아냐. 걍 궁금해서. 자, 이제 스퀴스가 마저 패.”

 

 피클스는 뒤얽혀있는 기타리스트들을 뒤로 하고 네이선과 머더페이스에게로 돌아왔다.

 

 “토키가 그러는되, 그 자식이 기타를 잘 치고 스퀴스가를 닮어서 좋아했때.”

 “그건… 그건 그냥 스퀴스가잖아. 전혀 도움이 안되는 정보라고.” 네이선이 눈을 흐렸다.

 “어, 그리고 만난 날에 그 자식 집에 가서 떡쳤때.” 피클스가 덧붙혔다.

 “으, TMI.” 네이선이 질색했다.

 “아냐, 그게 우리의 해결법이야.” 머더페이스가 말했다. “우린 토키와 스퀴스가가 떡치게 만들어야 돼. 그럼 사랑이 회복될 거라고!” 

 “아!!!”

 

 피클스와 네이선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안 돼 시팔, 그건 너무 역겨워! 한놈이 게이인 것까진 참아도 진짜로 그딴 비역질을 하게 두는 것 까진 못 하겠다.” 네이선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야, 나라고 이게 좋은 쥴 알아? 그러면 뭐 다른 아이디어 있쎠?” 

 

 머더페이스가 네이선에게 따져묻자 네이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이선이 피클스를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피클스는 시선을 피했다.

 

 “뭐라도 다른 정보를 좀 내 봐. 진짜로 그딴 짓을 할 수는 없다고!”

 “더는 들은 게 없따고! 아 씨. 모르겠따. 사실, 이게 최선의 방법일찌도 몰라...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데 빠구리 한번 하는 거 말고 더 확실한 게 있을까?”

 “미치겠군.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네이선이 팔짱을 낀 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네이선이 좀처럼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머더페이스가 네이선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뺨을 냅다 후려쳤다. 네이선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감싸쥐었다.

 

 “정신챠려! 니가 리더쟎아! 밴드를 샬리고 싶으면 빨리 션택해! 쟤네가 떡치게 만들던가, 아니면 밴드가 파탄나는 꼴을 보던가!”

 

 머더페이스의 말은 비약이 심했으나 신체적인 폭력에 힘입어 네이선에게 꽤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모양이었다. 네이선은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으… 이건 존나 언브루털한 일이야.” 네이선이 고통스러워 하며 말했다. “하지만 밴드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네이선이 모두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숙연한 자세로 앉아있던 피클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들 셋은 시선을 주고받으며 의지를 결연하였다.

 

 “오늘 밤, 우리는 밴드메이트들이 떡치게 만들거다.”

 

 네이선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장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

 

 

 

 

 “니들 다 정신 나갓냐? 헛소리 집어치우고 꺼져.”

 

 스퀴스가가 아까의 싸움에서 생긴 상처에 얼음팩을 문지르며 자신이 들은 제의를 딱 잘라 거절했다.

 

 “웨? 웨 싫은뒈? 니가 온 종일 하는게 그짓거리잖어! 니가 따먹은 여자만 나란히 세워봐도 지구 일곱바퀴는 돌텐데 거기에 남자 하나 낀다고 뭐가 달─”

 “완전 달라지지!! 그리고 그냥 아무 남자가 아니잔아! 토키라고!! 니들이 생각해도 존나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우리도 존나 싫긴한데… 그래도 토키가 다시 널 좋아하게 만들고 싶지 않냐?”

 

 네이선의 말에 스퀴스가가 주춤했다. 그의 눈이 갈 곳을 잃고 잠시 허공에서 방황했다. 스퀴스가는 잠시 고민하는듯 했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눈이 뒤집히지 안는 이상, 토키한테 그런… 그런 불미스러운 짓을 하는 일은 절대 업슬 거야. 이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스퀴스가는 팔짱을 끼고 더이상 대화를 나누는 것을 거부했다. 피클스가 네이선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최선을 다했어.” 

 “이제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군.” 네이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이선이 스퀴스가의 명치에 주먹을 날렸다. 급소에 풀스윙을 맞은 스퀴스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네이선의 팔 안에 꼬꾸라졌다. 네이선은 자신의 팔에 걸쳐진 스퀴스가를 수건이라도 건네듯 머더페이스에게 내밀었다.

 

 “머더페이스. 스퀴스가를 목욕시켜. 구석구석까지.”

 

 

 

*

 

 

 

 “밴드 미팅은 오늘 낮에 햇잔아. 이 느즌 시간에 왜 또 하는데? 그것도 왜 하필이면 스퀴스가의 방에서 모이냐구?”

 

 토키가 적당한 이유 없이는 스퀴스가의 방에 가는 걸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에 네이선은 토키를 끌고 가기 위해 밴드 미팅을 들먹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는 내내 토키가 투정부리는 걸 들어야했다.

 

 “왜냐면… 왜냐면 그냥 하고 싶으니까 그렇지. 더 따지지마.” 임기응변에 약한 네이선이 토키에게 짜증을 냈다.

 “이 딜도새끼들, 맨날 지들 꼴리는 대로 하고…”

 

 사형수의 심정으로 네이선을 따라가던 토키는 마침내 스퀴스가의 방 앞에 도착했다. 네이선은 옆으로 비켜서서 토키에게 먼저 방에 들어가게 했다. 토키는 뒤돌아서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힘겹게 스퀴스가의 방문을 열었다.

 

 토키는 스퀴스가의 방의 현재 모습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원래도 하얀 방을 더 새하얗게 빛내주던 전기 불은 꺼져 있었고, 방 안을 가득 채운 수많은 촛불들이 은은한 빛으로 그곳을 대신 밝히고 있었다. 토키는 그 초들이 악마소환의식이 컨셉이었던 지난 공연에서 쓰던 거랑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스퀴스가의 오디오 기기에서는 평소의 모드하우스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느리고 로맨틱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놓여져있는 킹 사이즈 침대 위에는 목욕 가운을 입은 스퀴스가가 누워있었다. 그는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토키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뻗어있는 스퀴스가를 쳐다보았다.

 

 “서프라이즈!” 

 

 방 한 구석에 숨어있던 피클스와 머더페이스가 뛰쳐나와 토키를 놀래켰다. 토키는 너무 놀라서 그들을 한대 칠 뻔 했다.

 

 “우리가 널 위해 준비했어 토키야. 니가 스퀴스가한테 맘껏, 어…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피클스가 토키의 팔을 툭툭 쳤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아무도 너보고 뭐라고 안 함.” 머더페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우리가 이 방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기 전까지 시작하지만 마.” 네이선이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토키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이내 그들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길길히 날뛰기 시작했다.

 

 “니들 미쳤서??! 이딴 짓을 외 하는데?!”

 “이러면… 이러면 니가 스퀴스가를 다시 좋아할 것 같아서…” 토키가 소리를 지르자 의기소침해진 네이선이 작게 중얼거렸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럴 리가 잇겟냐?! 이건 강간이잔아!!”

 “워, 그렇게 말하지 마. 그냥 자고 있는 사람이랑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잖어.”

 “그게 강간이야!!!”” 피클스의 말은 토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그냥 허용 가능한 페티쉬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머더페이스가 말했다.

 “니들은 다 역겨운 새끼들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겟서.”

 

 토키가 엄청난 데시벨로 소리를 지르며 진저리를 친 덕에 스퀴스가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스퀴스가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은 멤버들이 그에게 시선을 주목했다.

 

 “으어… 뭐가 어떠케 된거야?”

 

 스퀴스가가 주변을 보지않고 그의 긴 팔을 옆으로 뻗었다가 침대 맡에 놓여져있던 양초 하나를 쓰러트리고 말았다. 양초가 쓰러지면서 머더페이스가 향기를 내기 위해 방 안 이곳 저곳에 놔둔 아로마 오일에 불이 옮겨붙었다. 스퀴스가의 방 안은 삽시간에 화염에 사로잡혔고 그 불은 곧 나무 건물로 개조했던 모드하우스 전체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모두 패닉에 빠졌다.

 

 “왜 스프링쿨러가 작동을 안 하지??” 피클스가 의아해했다.

 “니가 맨날 물담배 피고 다녀서 꺼놧잔아!!” 토키가 소리쳤다.

 

 불붙은 서까래가 그들 주변으로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네이선, 피클스, 머더페이스는 황급히 밖으로 도망쳤다. 그들을 따라서 도망가려던 토키는 스퀴스가를 떠올리고 그가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토키는 화염에 휩싸인 방 한가운데에서, 스퀴스가가 침대 옆에 자빠진 채 기침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토키는 머리를 한갈래로 묶은 후, 심호흡을 한번 하고 스퀴스가가 있는 방 한가운데로 뛰쳐들어갔다.

 토키는 운 좋게도 불길에 크게 데이는 일 없이 스퀴스가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토키가 스퀴스가를 일으켜 세우자 그가 통증을 호소했다.

 

 “저 망할 새끼들이 날 기절시켯슬 때 발목을 접질럿나봐.”

 

 토키가 스퀴스가를 부축해 그가 걷는 걸 도왔다. 그 사이 스퀴스가의 방 입구는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토키는 철창이 쳐져있는 베란다 곁으로 다가가, 온 힘을 짜내 철창을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넓이만큼 휘었다. 그리고 철창 사이로 스퀴스가를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스퀴스가는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바닥에 주저 앉았다.

 스퀴스가가 자신 다음에 방에서 빠져나온 토키를 힐긋 쳐다보았다.

 

 “…너, 외 아까 딴 애들이랑 같이 안 도망갓서.”

 “니가 아직 방에 남아있으니까 그랫지!”

 “외? 너 나 실어진 거 아니었냐?”

 

 스퀴스가의 질문에 토키가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그런 적 업서.”

 “웃기시네. 나 게속 피해다녀놓고.”

 

 스퀴스가가 토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샐쭉한 표정으로 그를 외면했다. 스퀴스가는 그렇게 계속 꽁해있고 싶었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실어진 게 아니면 왜 그랫는데?"


 토키가 부끄러움과 좌절감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너는… 나한테 그런… 온갖 지랄이란 지랄은 다 해놋고… 막상 내가 가고 업는 동안엔 잘 지낸 것 갓아서… 역시 너한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거 갓아서… 그게 분햇서.”

 “잘 지내긴 누가─”

 

 스퀴스가가 화를 내려다 말고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토키를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거 신경 쓰고 잇섯냐? 너 진짜 멍청하다.”

 

 스퀴스가는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토키를 비웃는 것이 아니었다. 안도의 웃음이었다. 스퀴스가의 눈에는 이전보다 생기가 돌아와있었다.

 

 “그럼… 너 나 아직 좋아해?”

 “머? 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게 중요하냐?!” 토키가 짜증을 냈다.

 “니가…” 스퀴스가가 말을 한번 끊고 다시 말했다. “누군가가 날 좋아하다는 거 만큼 나한테 중요한 건 업서.”

 

 에고이스트 스퀴스가다운 말이었다. 토키는 말문이 막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갑자기 기침이 치밀어오르는 걸 느끼고 주먹에 대고 콜록거렸다. 토키가 가래를 끌어모아 뱉자 기도에서 먼지로 범벅이 된 점액이 나왔다. 스퀴스가도 숨쉬기가 답답한 걸 느끼고 목욕가운에 코를 풀었다가, 시꺼먼 얼룩이 묻어나오는 걸 보고 기겁했다.

 

 그들이 서있는 장소의 재질은 석벽이었기 때문에 불길이 번지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불길은 여전히 그들의 바로 뒤에서 넘실거리고 있었고, 유독가스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토키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짐작했다. 토키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스퀴스가, 우리 뛰어내려야 대.”

 “이 높이에서? 미쳣서?” 

 

 스퀴스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냥 헬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잔아!”

 “그거 기다리다가 우리 여기서 주거!”

 

 스퀴스가는 토키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았지만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아픈 발목 때문만이 아니었다. 토키는 동요를 가라 앉히지 못하는 스퀴스가를 보고 제시간 안에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토키가 스퀴스가의 다리와 허리 아래에 손을 넣어 스퀴스가를 들처 안았다. 그리고 스퀴스가가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그대로 베란다 아래로 뛰어 내렸다.

 

 “잠깐, 잠깐, 잠깐!!”

 

 둘은 깎아지른 모드하우스 외벽 아래로 추락했다. 스퀴스가의 눈 앞에 화염에 휩싸인 모드하우스의 상층을 배경으로 본인의 금발머리가 정신없이 휘날렸다. 스퀴스가는 그대로 그들이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토키의 얼굴이 그가 죽기 전에 보는 마지막 광경이 될 터였다.

 

 스퀴스가는 뭔가가 푹 꺼지는 소리를 듣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스퀴스가의 기대와는 달리,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들은 발할라에 있지 않았다. 둘은 건물 아래에 설치되어있던 에어쿠션 위로 착지해있었다. 스퀴스가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끔뻑거리다가 토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냥 맨땅에 뛰어내리는 줄 알았잔아!!”

 “내가 바보냐? 그런 지슬 하게?”

 “이런게 잇스면 잇다고 말을 해줘야지!!”

 

 토키는 스퀴스가를 안은 채 에어쿠션 밖으로 걸어나왔다. 스퀴스가는 안겨 있는 내내 자기가 토키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스퀴스가는 황급히 팔을 거두어 팔짱을 꼈다.

 

 “…존나 게이같네 이거.”

 

 스퀴스가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토키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스퀴스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고맙다고 하면 꼬추가 떠러지냐?” 토키가 스퀴스가에게 면박을 줬다.

 “아오 씨… 야 그래, 졸라 고맙다. 됏냐?”

 

 스퀴스가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마지못해 인사했다.

 

 “그나저나 외 불이 난 거지? 니들 내방에서 먼 짓 한 거야? 나는 외 이 꼴이냐고?”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자신의 방에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광경을 떠올린 스퀴스가가 자신이 입고 있는 목욕가운의 매무새를 매만지며 토키에게 물었다. 

 

 “어… 그 불은… 그 멍청한 새끼들이 나무 집에서 초를 피워서 난 거고… 우리가 니 방에서 머하고 잇엇냐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던 토키는 아픈 이를 뽑는 심정으로 짤막하게 설명을 마쳤다.

 

 “개네가… 우리를 떡치게 만드려고 햇서.” 

 “이 변태새끼들! 사람이 실타는데 진짜!”

 

 스퀴스가가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의 표정은 이내 분노에서 불안함으로 서서히 변했다. 스퀴스가는 지금 자신의 엉덩이에 느껴지는 통증의 원인이 방금 바닥에 자빠진 사건으로 유일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토키… 우리… 너… 안 햇지?”

 “안 햇서.”

 

 토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스퀴스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쩐지 한편으로 약간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외 안 햇는데?”

 “머 그런걸 물어봐? 내가 너 따먹었으면 더 조앗겟냐?”

 “당연히 아니지!! 그냥, 기회가 생기면 니가 할 줄 알앗지.”

 “외? 내가 너 조아하니까?”

 

 스퀴스가가 침묵했다. 토키는 그런 스퀴스가를 내려다보았다. 스퀴스가의 얼굴엔 검댕이 잔뜩 묻어있었고, 탈출할 때 불에 그을리는 바람에 끝부분이 타서 까맣게 쪼그라붙은 머리가 사방팔방으로 뻗쳐있었다. 그렇게 꼬라지가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토키는 그가 여전히 스퀴스가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토키는 방금 스퀴스가의 목숨을 구했다. 토키는 이걸로 드디어 스퀴스가와 쌤쌤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사실 애초부터 누가 더 우위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원래부터 동등한 존재였다. 토키는 아까 뛰어내리기 전에 겁에 질려 주저하던, 자신에게 안긴 채 매달리던 스퀴스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평소에 자기가 신이니 뭐니 자신만만하게 떠들기는 하지만, 결국 스퀴스가 또한 위기에 빠지면 겁에 질리는 인간이었다. 그냥 남들보다 좀 더 기타를 잘 치는 인간. 토키랑 똑같은 인간.

 그가 세상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를 잘 보이게 하고 싶어서 그에게 열심히 맞춰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토키는 스퀴스가보다 더 못한, 그를 빛내기 위해 존재하는 소품이 아니었다. 토키도 스퀴스가와 마찬가지로 엄연히 멤버의 일원이었고 한 사람의 기타리스트였다. 그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스퀴스가. 난 한 때 너를 좋아햇서. 니가 나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게 무엇보다도 나한테 중요햇서. 난 너를 이기고 싶어하면서도 너를 빛나게 하고 십엇어. 그래서 우리가 같이 연주를 하면 그러케 좋은 노래가 나왓던 거야.”

 

 토키가 손을 뻗어 스퀴스가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문질렀다. 그러나 토키의 손도 마찬가지로 더러웠기 때문에 스퀴스가의 얼굴은 이전보다 딱히 깔끔해지지 않았다. 토키는 검댕이 더 번져버린 스퀴스가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거에 목매지 안고도 연주를 잘 할 수 잇을 거 같아. 저번엔 미안햇서. 앞으로는 실수 안 할게.”

 

 토키가 스퀴스가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나, 우리 모두를 위해서 더 나은 기타리스트가 댈 거야.”

 

 하고 싶은 말을 원없이 털어놓은 토키는 미련없이 스퀴스가를 떠나 자기 몸에 묻은 검댕을 씻으러 가버렸다. 어느새부터인가 둘의 근처에 서 있었던 데스클락 멤버들이 아직 바닥에 자빠져있는 스퀴스가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와. 우리 토키, 완전 다 컸네.” 피클스가 말했다. 

 “이게 다 우리 덕분이지.”

 

 머더페이스가 코 밑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장가가는 자식을 보는 아버지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이런.” 피클스가 눈썹을 치켜떴다.

 “왜? 또 뭐야?” 네이선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클스가 네이선의 옆구리를 치면서 스퀴스가를 가르켰다. 스퀴스가가 아련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토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연애의 달인이 아니더라도, 스퀴스가가 무슨 심정인지는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썅. 이제 밴드에 절반이 게이구만. 끝내주네.” 네이선이 짜증을 냈다.










게로데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